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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리뷰] 더 웜카인드 The Womkind - 스크로파

by Haileee 2020. 4. 18.

더 웜카인드 The Womkind - 스크로파

저자는 『더 웜카인드』를 기획하게 된 이유를 이렇게 말한다. 래디컬 페미니즘의 논의가 쉬운 언어로 대중에게 공개된 적이 없었으며, 이제는 ‘맨즈 시스템’에 대해 수동-공격적으로 반응하는 시점을 넘어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내게 할 동기 · 의미부여적인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이젠 거부를 넘어 창조할 때다’.

『더 웜카인드』는 한국을 배경으로 쓰인, 현 대한민국의 상황과 맞닿아 있는 실제적인 책이다. 저자는 책 속에서 맨즈 시스템으로부터 탈출해 진정한 자신이 되는 과정을 하나의 탈출로 묘사한다. 이 책은 ‘맨즈 시스템’의 억압적인 메시지가 여성 개인에게 필연적으로 내면화된다고 지적한다. 또한 그에 대한 인식 없이는 맨즈 시스템의 메시지는 언젠가 발목을 잡을 족쇄가 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그런 결에서, 『더 웜카인드』는 여성이 자신에게 덧씌워진 불필요한 족쇄를 벗을 수 있도록 도와 개인적인 삶에서도 변환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모든 여성이 맨즈 시스템의 억압을 벗어나 최대한의 자기 자신이 될 수 있을 것’을 믿는다고 여러 번 힘주어 말한다.[예스24 제공]

 

 

저자명 'Scrofa'는 라틴어로 암퇘지를 뜻하며, 동일한 유래를 가진 이탈리아어는 돼지라는 뜻과 더불어 속어로서 '정숙치 못한 여성'을 뜻한다고 한다. 저자는 이 이름을 "타인이 우리에게 정숙치 못한 여성이나 혹은 돼지라는 꼬리표를 붙이는 것을 두려워하던 과거의 우리를 넘어서려는 시도"이며 "우리 자신에게 스스로 비규범적인 이름을 붙어기를 주저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말한다. 돼지도, 정숙치 못한 여성(성녀, 창녀의 이분법 중 창녀가 정숙치 못한 여성에 속할 것이다)도 일부 남성들이 여성을 비하하기 위해 가장 먼저 꺼내는 멸칭이라는 점에서 상징적인 필명이라고 생각했다. <더 웜카인드 The Womkind>라는 제목 자체도 인류를 뜻하는 영어 Mankind에서 남성인 man 대신 woman의 wom을 붙인 것으로, 우리나라를 지배하는 사회적 정서를 기준으로 볼 때 매우 과감하고 급진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동시에 이 책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치를 높여준다. 인류의 직역이 '웜카인드'인, 언제 도래할 지 알 수 없는 사회를 감히 꿈꾸는 '정숙치 못한 여성'이 쓴 책은 과연 어떤 내용을 담고 있을까, 하는.

 

<더 웜카인드>는 래디컬 페미니즘의 관점에서 가부장제 사회 속 여성의 삶을 알기 쉽게, 그리고 아주 직설적으로 설명해주는 책이다. 가부장제를 기반으로 수 천 년이 넘게 구축되어온 남성 중심의 체계를 '맨즈 시스템'이라고 칭하며 그 체계 속에서 여성이 당하는 수많은 종류의 가스라이팅을 가감없이 제시한다. 작고 얇은 책 안에 여자들이 어떻게 여성성이라는 틀에 갇혀 자신을 옥죄어 왔는지, 여성 인생의 최종 목표가 사랑과 결혼인 양 세뇌되어 왔는지의 핵심이 압축되어 있다. 내용은 짧지만 절대 짧은 시간 안에 읽고 끝낼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여성으로 살아오면서 뭔가 이상하다고 느껴왔던 것들, 의문감을 품었던 것들의 원인을 돌려말하지 않고, 그 민낯을 시원하게 까발린다. 차라리 모르고 사는 게 마음은 편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 정도로. 또한 그런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폭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철저히 남성 위주로 돌아가는 사회에서 여성이 무기력에 빠지지 않고 살아나갈 수 있는 길을 알려주기도 한다.

 

형식적 측면에서 평가하자면, 오탈자도 몇 군데 보이고 정제되지 않은 문장도 간간히 있다는 가독성의 문제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읽는 데 지나치게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무튼 나는 이 책을 많은 여성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막연히 당연하고 무해하다고 느껴왔던 것들의 진실을, 불편한 마음이 들 만큼 파격적으로 들춰낸 <더 웜카인드>를 읽은 많은 여성들과 다양한 의견을 나눠보고 싶다. 나는 거의 대부분의 내용에 공감하면서 읽었지만 분명 반대 의견도 있을 것이다. '이건 너무 지나치지 않냐', '너무 갔다' 등의 의견이 충분히 나올 만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에서 래디컬 페미니스트의 가치관은 아직 너무나도 급진적인 것으로 평가되니까. 이 책의 내용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장과 근거를 듣고, 나도 내 나름의 주장을 하고, 서로 반박하며, 여성들끼리의 토론을 가져보고 싶다.

 

"맨즈 시스템(Men's system)"은 남성을 위주로 수천 년 간 축적되어온 일련의 체계를 말한다. 맨즈 시스템 속에서 인간은 두 종류로 구분된다.

남성과 남성이 아닌 자들이다. 이는 곧 남성을 모든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문화적 행위의 주체로 위치시키는 이데올로기라 정의될 수 있다."

 

"인류가 "Womkind"로 표현되는 사회를 상정해보면 우리가 얼마나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 살고 있는가를 쉽게 깨달을 수 있다.

현 사회에서 단순화된 캐릭터를 그릴 때, 남성은 성별을 표시하는 시각적 상징물 없이 그대로 그려지나,

여성 캐릭터에는 여성임을 표현하는 상징들이 부가적으로 붙는다. 긴 머리카락, 가슴, 리본, 립스틱... (중략)

반대로 여성이 기본태인 사회를 상상해 보자. 그 사회의 여성 캐릭터는 지금의 남성 캐릭터처럼 어떤 부가물도 없이

기본태로 그려질 것이다. 대신 성별의 차이를 표시하기 위해, 남성 캐릭터는 넓은 어깨나 좁은 골반, 튀어나온 성기 등의

부가적인 시각적 상징을 갖게 될 것이다."

 

"맨즈 시스템은 우리에게 여성으로서 가치를 갖는 기간이 한정되어 있다고 이야기한다.

'예쁠 나이'라거나, 더 노골적으로는 '여자는 크리스마스 케익과 같다'는 이야기가 여기에 속한다.

그러나 여성의 나이는 오직 맨즈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에 있어서만 유의미하다. 여성에게 조급함을 들게 하고 남성이 보기 좋은

'어린' 외모를 유지하도록 하는 데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을 뿐, 우리 자신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스물다섯을 넘어도, 서른을 넘어도, 마흔을 넘어도 우리는 성장하고 변해갈 뿐이며 우리 자신의 가치는 달라지지 않는다."

 

"남성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방식과 여성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방식에서는 분명 차이가 있다.

남성은 대개 스스로를 미학적으로 대상화하여 치장에 집중하기보다는, 미학적 이상의 집약체인 여성을 감상하고 소유하려 애쓴다."

 

"'좋은 대상물'로서 느끼는 만족감은 절대 주체로서 갖는, 온전히 스스로를 위한 만족감과 같은 층위에 놓일 수 없다.

약간의 인정과 보상이라는 반쪽짜리 대가에 매달리는 것은 결국 스스로의 내부를 조여들게 만든다."

 

"우리는 사랑으로서 완전해지는 삶 외의 다른 삶을 추구하는 방법을 제안받지 못했다.

여성 잡지에서는 남성의 마음을 사로잡는 법이라거나 미용에 대한 칼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반면

남성 잡지에서는 시계나 차 등 스스로의 지위를 강조할 수 있는 요소들이 주로 다뤄진다."

 

"결국 자신을 채우는 것은 본인의 손으로 만들어 낸 성취와 '할 수 있다'는 자기 효능의 감각이며 끝까지 당신의 편에 서 있는건 당신 자신 뿐이다."

 

"홀로됨을 긍정하고, 타인과의 관계는 긴 여로에서 잠시 함께 걸어갈 사람을 마주한 것 뿐이라는 걸 깨달음으로써

우리는 고독을 그 자체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페미니즘은 우리의 불행의 서사를 단순히 파헤치고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점검하고 그 속의 모순을 인지하기 위한 발판이다.

자신이 처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고 이를 토대로 모든 방면에서 변화를 이룩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그럴 힘이 있다."

 

"당신 자신은 과거의 총합체가 아니라 미래를 향한 잠재태다.

모든 하루를 철저히 자신을 중심으로 배치하고 사용하면서 오롯이 자신만을 위해 사는 건 무력감을 저 멀리 쫓을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무기력을 탈피하는 데에 특히 도움이 되는 것은 성취의 경험이다. 무력감의 반대는 상황에 대한 통제력을 바탕으로 한 자신감,

즉 스스로의 힘으로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감각이다. 성취의 경험이 축적되면서 이 감각은 서서히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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