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울극복일기

우울증 극복 일기 2

by Haileee 2021. 3. 9.

엄마라는 존재는 제 자식에 한해서만 어떤 촉 같은 게 생기는 걸까? 최근 들어 엄마가 내 상태를 부쩍 걱정하기 시작했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그리 길지 않은데도, 병원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도 않았는데도 요즘 내가 정신적으로 문제를 겪고 있는 게 아닐까 의심을 하신다. 아직 병원에 다니기 시작했다는 걸 알릴 용기가 나지 않아 요즘 우울하냐는 질문을 들어도 아니라고, 괜찮다고 둘러댔는데도 곧이 곧대로 받아들이시지 못한 것 같다. 언젠가는 말을 해야만 하는데 그걸 언제로 정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더 이상 엄마에게 짐을 얹고 싶지 않다. 영원히 숨기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어떻게든 숨기고 사는 상태에서 벗어날 용기가 나지 않는다. 오늘 두 번째 내원 후 약 처방을 기다리고 있는데 참 타이밍 좋게도 엄마에게 응원의 메시지가 왔다. 결국 참지 못하고 병원 화장실로 뛰쳐가 펑펑 울고 말았다. 너무 죄송스러워서. 맏딸이 사람 구실 못하는 게 너무 부끄러워서. 부모자식 간이라는 이유로 받는 무조건적인 사랑과 지지에 제대로 보답하지 않는 나 자신이 너무너무 싫어서.

안 그래도 선생님과 상담을 하면서 저번 주보다 훨씬 많이 울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나의 한심한 과거를 처음으로 털어놓았다. 내가 지은 죄에 대해서. 귀중한 돈과 시간을 한심하게 흘려보낸 부끄러운 과거에 대해서. 이렇게까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게 너무 부끄러웠다. 몇 시간이 흐른 지금도 너무 부끄럽고 후회스러운 감정까지 들지만 병원에서라도 말하지 않으면 정신적으로 견디기 더더욱 힘들어질 게 뻔하기 때문에 말할 수밖에 없었다.

우울과 불안 증세가 심각하다는 검사 결과는 그리 놀랍지 않았다. 놀랍지는 않고 그냥 슬펐다. 자력으로 극복해내지도 못한 주제에 계속 외면해 온 마음의 병을 직시한다는 건 생각보다 슬픈 일이었다. 회복하기 위해서는 6개월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나는 태어나지 않는 게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오후 11:51 추가
방에서 몰래 먹는 습관 고치겠다고 결심해놓고선 역근처 마트를 지나치지 못하고 아몬드 한봉지를 사와서 거의 2/3을 침대 위에서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같이 들어있는 딱딱한 과자를 씹다가 교정기 장치가 빠졌다. 새로 붙인지 얼마 되지도 않은 건데.. 화가 나고 쌍욕이 나오고 벽에 뒤통수를 퍽퍽 쳐댔다. 전화하는 걸 무서워해서 치과 예약 전화도 2주째 미루고 있는데.
급하게 먹어댄 탓에 속이 안좋다.
일찍 자기로 한 결심도 무색하게 자정이 되도록 또 깨어있다.
내일 일어나면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싶은데.
씻는 것조차 귀찮아서 양치와 세수도 거르려다가 정신 차리고 해냈다. 최근에 산 세럼의 향이 좋다. 이물질 잔뜩 낀 모공과 치아를 방치하고 잠들지 않게 되어 다행이다. 씻을 힘은 남아 있어서 다행이다.

'우울극복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울증 극복 일기 6  (0) 2021.03.18
우울증 극복 일기 5  (0) 2021.03.17
우울증 극복 일기 4  (0) 2021.03.11
우울증 극복 일기 3  (2) 2021.03.10
우울증 극복 일기 1  (0) 2021.03.0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