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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극복일기

우울증 극복 일기 5

by Haileee 2021. 3. 17.

나의 우울을 이렇게 글로 기록하는 게 과연 바람직한 일인지 잘 모르겠다. 기록을 위해 우울을 곱씹는 과정에서 그 우울에 더 매몰되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언젠가 내가 이걸 극복해낸다면, 그런 날이 온다면, 내가 이런 적도 있었구나. 이런 과정을 통해 극복해냈구나 하며 홀가분한 마음으로 지금까지 써온 글을 읽어보고 싶다. 그런 날이 오기만을 바라며 오랜만에 다시 기록을 해본다.

 

월요일엔 세번째 내원을 했다. 차도가 없어서 약의 종류를 전면적으로 바꾸었다. 아빌리파이정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 약을 먹으면 살이 찔 수도 있다는 얘길 많이 봐서 그게 제일 걱정이다. 여기서 살이 더 찌면 대체 어떻게 일상 생활을 하라는 건지.. 지금도 충분히 힘든데. 아직까진 그 약을 한 번밖에 복용하지 않아서 뭔가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나진 않지만 걱정이 크다. 제발 부작용이 크지 않았으면 좋겠다.

 

약 모양 검색을 통해 내가 무슨 약을 먹는지 기록하고(내가 다니는 병원은 약을 직접 처방해 주어서 처방전을 볼 수가 없다) 부작용들에 대해 알아보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다들 나랑 비슷하게 힘든데, 스스로 극복하며 살아가고 있는데 나만 나약하게 약에 의존하려 하는 건 아닌지. 충분히 혼자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인데 약의 부작용까지 걱정해가며 무의미한 데에 감정 소모를 하고 있는 게 아닌지.

 

하지만, 이런 내가 싫어도 나는 지금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는 걸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아침에 간신히 깨어나서 간신히 씻고 엄마의 눈을 피해 간신히 밖으로 걸어나올 뿐이다. 밖으로 나와 햇빛을 쬐어도 기분이 좋아지지는 않는다. 아무 이유 없이 가슴이 뛰고 발걸음은 모래주머니를 매단 것처럼 천근만근 무겁다. 앞서 열거한 것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렇게 구구절절 글을 쓰며 자기연민에 빠져있는 것뿐이다.

 

입맛이 없고 뭔가 챙겨먹을 힘도 없다가, 갑자기 연어가 먹고 싶다는 욕구가 들어 스시집에서 연어롤을 시켰다. 양도 많고 맛있는 연어롤이었는데, 음식을 씹는 내내 내가 이렇게 비싸고 정성껏 만들어진 음식을 먹을 가치가 있는 사람인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말 누구보다 잘 먹는 사람이었는데 이런 생각이 들어 반을 겨우 먹고 남겼다는 게 황당하고 어이가 없다. 먹고 싶은 음식을 맛있게 먹는 것조차 죄책감이 든다. 씹는 데 시간 들일 일 없는 음료수, 봉지를 뜯어 입에 쑤셔넣기만 하면 되는 과자 같은 가공식품만 생각 없이 입에 넣는다. 나는 정성껏 차려진 식사를 할 가치가 없는 사람이다. 그렇게 느껴진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잠시나마 한결 나아지는 기분을 누릴 권리조차 나는 잃어버렸다.

 

순간순간이 힘들고 삶이 무의미하다고 느껴져도 스스로 목숨을 끊을 수는 없다. 난 겁이 많으니까. 스스로 목숨을 끊는 동안 느낄 고통도 무섭고, 남겨진 사람들이 나 때문에 슬퍼하게 될 것도 무섭다. 그래서 그냥, 상상만 한다. 한강을 보며 익사하는 상상을 하고 차를 보며 치여 죽는 상상을 한다. 아니면 원래 없는 사람이었던 것처럼 갑자기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한다.

 

언젠간 내가 이런 상황에 놓여있다는 사실을 가족들도 알게 될 날이 올텐데. 그 날이 너무 두렵다. 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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