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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극복일기

우울증 극복 일기 4

by Haileee 2021. 3. 11.

병원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엄마가 알게 되었다. 내가 직접 말한 건 아니고, 며칠 전 내 방에서 무언갈 찾으려고 하다가 책상 서랍 속 약 봉투를 발견하신 거였다. 요 며칠 간 엄마가 내 마음 상태를 계속 신경쓰신 건 이것 때문이었던 것 같다.

엄마는 그렇게 말했다. 돈 못 벌고 그러는 게 불효가 아니라 이런 걸 계속 숨기는 게 불효라고. 가장 먼저 가족에게 말하라고. 가족은 모두 내 편이니까. 나도 울고 엄마도 울었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에도 잠시 정신과 약을 먹은 적이 있는데, 몇 년이나 흐르고도 이런 문제로 엄마를 울게 만들었다는 사실이 너무 견디기 힘들었다. 엄마가 외출하자마자 침대에 누워 또 소리내어 울었다. 이렇게 자주 우는 건 참 오랜만이다. 내가 이런 어른이 될 줄 몰랐는데. 아니, 어렴풋이 알았을지도 모른다. 모든 걸 회피하고 미루는 삶을 살면서 언젠간 이렇게 되리란 걸, 어릴 적의 내가 몰랐을 리 없다. 모르면서도 쭉 외면해 왔던 거다.

온몸에 힘이 빠지고 정신이 몽롱하고 머리가 아픈 게 약의 부작용인지, 너무 울어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 우울증 약을 먹으면 멍청해진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어서 조금 무섭다. 여기서 더 멍청해지면 어쩌라고. 식욕이 돋아서 살이 찐다는 얘기도 있다. 여기서 더 살찌면 어쩌자고. 무언갈 하려고 움직일 힘이 조금도 나지 않아서 예약해 둔 치과도 가지 못했다. 이미 한 번 못가서 다시 예약한 건데. 매번 약속을 지키지 않는 내가 얼마나 이상하고 한심해 보일까. 또 전화하기가 무섭다. 사람 만나는 게 무섭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가도 되는 걸까? 섣불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가 병이 더 악화되면 어쩌지.

몸을 좀 혹사시키고, 무언가 새로운 걸 배우고, 수입이 들어왔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지원을 한건데, 막상 생각보다 빨리 면접 연락이 오니까 또 두렵다. 채용될 지 안 될 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인데 벌써부터 두렵다. 생각이 지나치게 많은 건 모든 것의 원흉이다. 생각만 하고 그 외의 것은 무엇도 하지 못하게 된다. 그걸 알면서도 생각을 멈출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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