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냥 새로운 아침이 오는 게 끔찍하게 싫은가보다. 일찍 일어나보겠다고 유료 알람 어플도 설치하고 자기 전 아침 루틴까지 세우고 잤건만, 알람이 울리기 1시간 전쯤 저절로 눈이 떠지면 그대로 알람을 끄고 다시 잠들어 버린다. 눈이 떠지면 그대로 일어나면 되는건데. 일어난다는 건 그날 하루가 시작된다는 일이고, 나는 알람을 끄고 하루의 시작을 스스로 차단해버리고 만다. 오늘도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오후 12시가 되도록 침대에만 누워 있었다.
일어나서는 어제 먹다 남은 아몬드와 집에 있는 과자를 입에 쑤셔넣었다. 충분히 건강한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는데도, 집에 과일이 있는데도 또 아무렇게나 먹었다. 몸무게를 재보니 1kg가 더 늘어있었다. 한동안 식습관을 개선하면서 감량했던 몸무게가 서서히 다시 돌아오고 있다. 다시 뚱뚱해지고 있고 옷이 여유있게 맞지 않는다. 내가 이루었던 걸 내가 직접 망가뜨리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슬펐다. 그런 내가 너무 싫어서 아무렇게나 퍽퍽 때렸는데, 아프고 한심해서 소리내어 엉엉 울었다. 오랜만에 집에 아무도 없어서, 소리내어 우는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어쩐지 자유로운 기분이었다.
일단 양치를 하고 무작정 집밖으로 나섰다. 일단 햇빛이라도 봐야할 것 같아, 머리도 감지 않고 모자를 눌러쓰고 무작정 나왔다. 날이 참 많이 따뜻해져서 그만큼 집앞 공원에는 사람도 많았다. 활기찬 분위기였다. 그 속에 있는 나만 어두웠다.
공원 앞 카페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사고(돈이 있어 커피를 사먹을 수 있다는 사실이 다행스러우면서도 죄스럽다) 항상 휴대폰 액정에 처박혀 있던 고개를 오랜만에 들어 하늘을 보았다. 오늘따라 내리쬐는 햇빛이 많이 뜨거워서 짜증났지만 대낮의 하늘은 참 예뻤다. 아메리카노도 맛있었다. 난 원래 산책을 좋아하는데, 요즘은 집앞 편의점까지 걸어갈 힘도 나지 않아서 가까운 거리도 버스를 타곤 했다. 하지만 오랜만에 나와서 하늘을 보고 있으니 조금 더 걸어볼 수 있겠다는 용기가 났다. 벤치에서 일어나 한강 공원으로 향했다.
걷는 동안은 생각보다 몸이 무겁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노래도 듣지 않고 걷는데 오만 생각이 다 들었다. 불현듯 웃긴 생각이 나서 웃다가 뜬금없이 눈물이 고였다. 역시 지금 내 감정은 어느 정도 고장이 나있는 게 맞다. 조금 걷다보니 한강을 바라보며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다시 앉았다. 이 물 속으로 들어가서 갑자기 사라져버리면 집이 발칵 뒤집히겠지. 익사하기까지 많이 고통스럽겠지? 그런 생각이 계속 머릿속으로 흘러드는 게 자연스럽다. 미치도록 슬프고 고통스러울 때에만 자살 상상을 하게 될 줄 알았는데, 그냥 오늘 저녁밥 뭐 먹을까 고민하듯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이상한 걸까? 강을 눈앞에 둔 사람들은 모두 이런 생각을 할까?
집에 돌아와서는 전신 스트레칭을 했다. 격한 운동이 우울증에 좋다지만 요즘은 격하게 움직일 기력이 나질 않아서. 일단 스트레칭으로 시작했다. 정적으로라도 몸을 움직인 걸 칭찬해줘야지. 잘했어 나야.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입사 지원을 한 곳에서 전화가 와서 면접 일정을 잡았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나에게 강제성을 부여하고 수입이라도 들어온다면 나아질까 싶어서 지원한 건데 이게 맞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신체적으로 많이 고된 업종이지만, 뭘 하든 지금 이 상태보단 나을 것 같다. 면접 예상 질문에 대한 답변을 조금 적어보았다. 면접을 잘 볼 수 있을지, 합격하여 입사한다 해도 내가 일을 잘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가 지금 일을 하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고 행복해지고 싶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도태된 채로 매몰되어 있다가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기도 하다.
내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 행복해져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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