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울극복일기

우울증 극복 일기 7

by Haileee 2021. 3. 22.

초진 때보다 많이 나아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낀다. 내가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는 게 최선의 방법이라는 비관적인 생각도 많이 줄어들었다. 나만 죽도록 괴롭고, 세상 모든 고난이 나만을 향하고 있다는 생각도 일종의 나르시시즘이라고 볼 수 있을까. (신을 믿지는 않지만) 신이 그만큼 나한테만 관심을 쏟고 있다는 믿음과 다를 바 없으니 말이다. 아무튼,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어두운 시간이 내겐 조금 길었을 뿐이고 나도 여느 누구와 같이 이 시간을 극복해낼 날이 올 것이라는 믿음이 조금씩 생겨나고 있다. 이대로 죽기는 아깝다는, 언젠가 빛 볼 날이 올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 끝없이 비관적인 것보다는 나은 것 같다.

 

 

무엇보다 다행인 건, 햇볕 아래에서 걸을 힘이 다시 생겼다는 것이다. 발걸음 하나 내딛는 것조차 힘들 때가 가장 절망적이었으니까.

 

 

 

목적지보다 한 정거장 일찍 내려서 처음 걸어본 길의 하늘

 

 

 

건물과 차가 즐비한, 별 특징없는 도심의 거리라도 파란 하늘과 처음 보는 풍경이 있다면 괜찮다. 적당히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걸을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진심으로, 마음만 먹으면 나가서 여기저기 활보할 수 있는 튼튼한 두 다리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저 날의 하늘도 특별할 것 없는 길거리의 특별할 것 없는 초저녁의 하늘일 뿐이지만, 그냥 내가 다시 모르는 장소를 가볍게 걷고 있다는 걸 기념하고 싶어서 찍어보았다.

 

 

 

한 정거장 걸어서 간 카페에서 먹은 자몽에이드와 쿠키. 너무 맛있었다.

 

 

나에게 가장 쉽고 빠른 기분 전환 방법 두 가지가 분위기 좋은 카페에 찾아가서 맛있는 것 먹기, 모르는 장소 걷기이다. 내가 이런 것들조차 할 가치가 없는 존재라고 느껴지던 나날들은 너무나 괴로웠다. 그래서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밥먹듯이 했던 것도 같다. 지금은 바꾼 약이 아주 잘 들고 있는 건지, 걷는 것도 걷는 거지만 먹는 즐거움을 다시 만끽하고 있다. 이전 일기에 썼던 우려에서 단 한 치도 빗나가지 않고 살이 조금 쪘다. 오랜만에 내가 정해둔 몸무게 마지노선을 넘어버렸다.

 

 

몇 주 전, 입맛이 없었을 때도 살이 찌긴 쪘었다. 맛있는 음식을 즐길 의욕은 없지만 배는 주렸기 때문에 편의점에서 아무거나 쓸어담듯 사와서 입에 쑤셔넣고 잠들었으니 살이 찌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땐 몸무게를 재보고 너무 괴로워서 울고 내 몸의 살들을 전부 뜯어내고 싶었는데, 오늘 몸무게를 확인했을 땐 신기하게도 그런 느낌이 없었다. 그냥 쪘구나. 당연히 쪘겠지 그렇게 먹었는데... 정도의 생각에 그쳤다. 그러고 나선 떡볶이를 시켜 먹었다. 건강에 해만 끼치는 악마의 음식인 건 알지만.. 맛있으니까. 살 생각은 잊고 일단 맛을 즐겼다. 지금 내겐 뭔가 먹고 싶다는 감정 자체가 귀중하니까.

 

 

그 외에 기록하고 싶은 것. 요즘 명상을 열심히(?) 하고 있다. 하루에 한 번은 꼭 하고 있다. 지금 현재 내가 호흡하고 있다는 것에 집중하고, 흘러드는 잡생각은 파도치는 바다에 흘려보내는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형상화한다. 영상에서 흘러나오는 음악과 내 호흡 소리에 집중하다 보면 기분이 편안해진다. 긍정적인 말을 스스로 읊는 긍정 확언 명상보다는 일단 내 머릿속에 잠식된 부정적인 생각을 비우는 명상이 지금의 내게 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어제는 명상을 다 끝내고 나니까 갑자기 눈물이 터져나왔는데 이건 대체 무슨 감정일까? 내일 병원에 가서 선생님께 물어보면 알 수 있으려나.

 

 

youtu.be/cvPS_25gRPs

(요즘 내가 하고 있는 유튜브 명상)

 

 

하나 더. 오늘 정말 정말 오랜만에 운동을 했다. 워밍업 5분, 본운동 5분 합쳐서 10분 했다. 심지어 본운동은 10분짜리 영상이었는데 너무 힘들어서 5분만 하고 끝냈다. 그게 운동한거야? 라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겠지만, 정말 오랫동안 몸 움직이기를 힘들어하던 나에겐 엄청난 도전이었고 엄청난 성취감을 느꼈다. 건강 관리도 중요하지만 아주 작은 성취감이라도 쌓아가기 위해 매일, 아니 이틀에 한 번이라도 10분 동안 몸을 움직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공부도 해야 하고 일도 해야 하지만 지금 나에겐 이 정도로 내 맘을 돌보는 게 최우선이고, 동시에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다. 점점 더 나아져서 점점 더 사람답게 살아가고 싶다. 그냥 보통 사람처럼. 일의 기쁨과 슬픔이란 걸 느껴보면서.

'우울극복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울증 극복 일기 9  (0) 2021.03.25
우울증 극복 일기 8  (0) 2021.03.23
우울증 극복 일기 6  (0) 2021.03.18
우울증 극복 일기 5  (0) 2021.03.17
우울증 극복 일기 4  (0) 2021.03.11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