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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리뷰

[리뷰] 진짜 게으른 사람이 쓴 게으름 탈출법 - 지이

by Haileee 2021. 3. 22.

 

 

요즘 출판되는 에세이집 표지들은 전부 누워있는 사람 일러스트라는 우스갯소리를 본 적이 있다. 사실 <진짜 게으른 사람이 쓴 게으름 탈출법> 또한 요즘 쏟아져 나오는 '집에 있는데 집에 가고 싶다' '열심히 살아버렸다' 어쩌구.. 류의 에세이집 표지의 문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솔직히 기대감을 주는 표지는 아니지만 막상 펼쳐보면 <진짜 게으른 사람이 쓴 게으름 탈출법>은 '유치원생 수준의 의지력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엑기스만 담겨있는 매우 유용한 실용 서적이다. '진짜 게으른 사람'은 이 책을 읽는 것마저 미룰 확률이 높다는 걸 안다. 나도 구입해 놓고 며칠 후에야 읽기 시작했으니까... 하지만 프로게으르머라도 꼭 시간을 내서 읽어보았으면 한다.

 

 

이 책은 완벽한 실용서다. <진짜 게으른 사람이 쓴 게으름 탈출법>은 거두절미하고 처음부터 '일단 이거부터 하라!'고 조언한다. 저자가 자칭 '진짜 게으른 사람'이기 때문에 '진짜 게으른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주 잘 알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게으름이나 의지, 동기 부여 등에 관한 저명한 심리학자의 실험 결과는 이미 시중의 수많은 서적에 실려있다. 물론 이러한 배경지식을 쌓는 것도 게으름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우 중요하지만, 정말 말도 안되게 게으른 우리들에겐 지식보다 현실밀착형 지침서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을 읽다보면 그야말로 저자가 '도시락 들고 쫓아다니면서' 아침엔 이렇게 하고 점심 시간엔 이렇게 하고 자기 전엔 이렇게 해 알았지? 하고 귀에다 대고 직접 말해주는 기분이 든다. 유치원생 수준의 의지력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지침들이기 때문에 이 책이 요구하는 것들은 대단히 어렵지도 않다.

 

 

저자는 계속해서 우리의 의지력이 '유치원생 수준'임을 강조하는데, 단순한 비유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유치원생 다루듯 하는 것은 정말 중요한 것 같다. 웬만한 성격 파탄자가 아닌 이상 사람들은 유치원생을 대할 때 기본적으로 친절하니까. 자신에게 충분한 시간을 주고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려 주자. 잘 해냈을 땐 아낌없이 칭찬해주고, 실패했을 땐 너무 다그치지 말고 차분하게 반성하는 시간을 갖자.

 

 

시간을 운용하는 법, 계획 세우는 법 등 실용적인 내용들도 좋았지만 가장 좋았던 건 '자기비하 하지 말 것'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게으름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 책을 펼쳐본 사람치고 자기비하에 빠져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저자는 자기비하를 절대 해서는 안되는 이유를 아주 간결하게 설명하는데, 그 어떤 자기개발서의 내용보다 쉽게 와닿았다.

 

 


"게으름에서 정말로 탈출하고 싶다면, 뿌리 깊이 박힌 자기비하라는 습관을 의식적으로 끊어내야만 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드리는 이유는 자기비하를 하면 기분이 나빠지기 때문이 아닙니다. 자존감이 떨어지기 때문도 아니고, 소중한 나를 아껴줘야 하기 때문도 아닙니다. 물론 그것들 또한 중요한 요소이지만, 결정적인 이유는 아닙니다.
(...)
자기비하를 하지 말아야 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자기비하가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비하를 하면 잘못 보낸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가?
자기비하를 하면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데 도움이 되는가?
나는 자기비하를 하며 멈춰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가?

그 어느 것도 아닐 겁니다. 이젠 지겨우시겠지만, 우리의 의지력은 아직 유치원생 수준이라고 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유치원생 조카가 있다고 가정해봅시다. 조카가 할 일을 어제 못했다고 완벽주의에 빠져 괴로워하면 좋을까요, 아니면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오늘 할 일을 다시 씩씩하게 하면 좋을까요? 당연히 후자겠죠."

 

자기비하가 나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다. 나도 그렇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나는 남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면서 자기비하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내게 자기비하가 왜 나쁜지, 왜 당장 멈춰야 하는지 단호하게 그 이유를 말해준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발전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전혀 어렵지도, 어떤 과학적인 실험 결과를 바탕으로 하지도 않는 간결한 문장 하나에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까지 들었다. 그래. 내가 여태껏 자기비하를 해서 얻은 건 거지 같은 기분뿐이었다. 왜 뭐 하나 얻을 것도 없는 짓을 하며 시간 낭비를 해야 하나.

 

 

요즘은 최대한 나를 평가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우울증 약의 영향일지도 모르겠지만 부정적인 생각과 자기혐오라는 블랙홀에 빨려들 때까지 생각이 나아가지도 않는다. 갑자기 나를 사랑해야지! 결심한다고 해서 나를 사랑하게 될 수는 없는 법이기에, 그냥 지금의 나를 만들어온 과거 경험에 대해 더 이상 평가하지 않으려 한다. 이게 나의 최선의 노력이다. 그러다보면 좀더 현재의 나에게 집중할 수 있게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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