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잡담

그냥 이런저런 넋두리

by Haileee 2021. 2. 20.

1
옛날 꿈을 꿨다. 옛날옛적 초등학생 시절 동창도 나오고, 대학 동기도 나오고... 하룻밤 꿈으로 일대기 하나를 쓴 기분이다.
꿈이란 건 항상 내용이 중구난방이기 마련이고 잠에서 깨어난 지도 몇 시간이 지나서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딱 하나 제대로 기억나는 부분은 대학 동기들과 대화하며 20대 초반 시절을 그리워 했다는 거다. 꿈인데도 옛날을 추억하며 가슴이 찌릿거리는 게 생생하게 느껴졌다. 과거란 어쩜 이렇게 끝도 모르고 미화되는 걸까. 이성적으로 생각해보면 내 20대 초반 시절은 그다지 아름답지도 않았다. 일상은 단조롭기 짝이 없었고, 자존감은 그때도 지금만큼이나 낮았고. 즐거운 기억이 아예 없는 건 아니지만 가끔 꺼내볼 수 있는 즐거운 기억의 조각들은 먼 과거까지 거슬러가지 않아도 충분히 존재한다. 그런데도 꿈 속의 나는 20살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현실의 나는 그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를 부질없다고 보는 편이다. 물론 하루아침에 다시 스무 살이 된다면, 아무리 나라도 두 번째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며 치열하게 살아갈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초에 불가능하니까. 내가 아무리 돌아가기만 한다면 더 잘 할 수 있는데 라는 생각으로 시간을 낭비한다고 해도 돌아갈 일은 절대 없으니까. 그냥 과거에 이랬더라면, 이라는 생각을 최대한 안하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역시 꿈은 무의식의 발현이라, 그렇게 열심히 현실 직시를 하려고 해도 나의 무의식은 현실의 나에게서 벗어나고 싶어서 부단히 발버둥치고 있는 중인가 보다. 지금 내가 잘못된 삶을 살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고치질 않으니, 현실에선 바꿀 수 없는,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바뀌길 갈망하는 ‘시간의 흐름’을 꿈 속에서라도 바꾸고 있는 것 같다. 나의 무의식이.

2
남과 비교하지 말 것. 자신과의 경쟁에서 이길 것.
중요하다는 걸 안다. 남과 비교하며 괴로워한다 해서 바뀌는 건 없다는 사실도 충분히 안다. 그냥 괴로워하며 쓸데없이 낭비하는 시간만 축적될 뿐 도움 될 거 하나 없다는 거 너무 잘 안다. 하지만 친구의 좋은 소식을 듣고 온전히 기뻐할 수 없어진 스스로의 모습을 깨닫고 놀랐다. 이 정도로 추한 인간은 아니었는데. 나이는 먹고 성취한 건 없으니 마음만 곪아간다. 난 왜 아무 것도 안 할까? 왜 항상 결심만 할까?
자기계발 도서를 탐독하는 일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병에 걸려 있는 걸까?
이건 정말 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내가 이 나이 먹도록 바뀌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 것이 단순한 게으름이 아니라 마음의 병이 아닐까, 라는 생각. 하지만이것조차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려는, 내가 지금 이렇게 아무것도 못하고 있는 데에 병 핑계를 대고 합리화하려 드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든다.
책을 읽어도, 어플에 10만원을 걸어도 난 아침에 일어나지 못한다. 새로운 아침이 오는 걸 두 눈으로 확인하길 두려워한다.
정말 그냥 단순히 게으른 거라면. 단순히 남보다 잠이 좀 많은 것 뿐이라면. 뭐가 이렇게 고치기가 힘든 건데. 나는 정말 10년이 넘도록 병에 시달리고 있는 걸 깨닫지 못하고 시간만 흘려보내고 있는 걸까?

3
하고 싶은 건 많다. 나는 남을 돕는 사람이 되고 싶다. 취약 계층의 여성이나 청소년을 돕고 싶다. 언젠가 경제적 여유가 된다면 유기동물을 입양하고 싶다는 생각도 한다.
지금 내가 쓰고자 하는 논문의 주제도, 내 졸고를 통해서라도 미디어를 통해 전달되는 차별에 대해 인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정한 것이기도 하다.
그럼 뭐해. 쓰질 않는데.
교수님과의 상담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후로 긴 슬럼프를 겪고 있는 걸까. 내가 쓰고자 하는 걸 관심 깊게 살펴봐주지 않는 것이 충격이었다. 이 분 아래서 계속 이 논문을 쓸 수 있을까. 계속 그런 의문이 든다. 계속 의심하고 있기 때문에 논문에도 진전이 없는 걸까. 나보다 더 전문적이고, 나보다 더 경험 많은 분의 서포트를 받으며 논문을 써나가고 싶은데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처음에는 내가 열심히 하면 된다고, 열심히 해야겠다고 결심했는데 과연 이게 내가 열심히 한다고 될 문제인지 자꾸만 의심이 든다. 아니, 일단 열심히 하고서 이런 걱정을 해야 되는데 애초에 열심히 하지도 않는다. 솔직히 내가 쓴 논문 내용과, 내 논문 주제와 관련된 선행 연구에 어떤 관심도 가져주지 않는 교수님 아래서 열심히 하고픈 의욕이 생기기가 더 어렵다. 역경 속에서 더욱 독기를 품고 열심히 해나가는 타입도 아니라서 더 힘들다.
하지만 지금 내게 남은 선택지는 그저 하는 것밖에 없다.
내가 하고 있지 않을 뿐.
아니, 내가 남은 선택지는 두 개다. 그냥 하기. 지금처럼 패배감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않기.
누가 봐도 전자를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 왜 나는 지금 상황에서 빠져나오질 못하는 걸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패배주의와 무기력이 익숙한 사람이 되어버렸나보다. 뭐든 해나가는, 나아가는 것보다 무기력하게 가만히 있는게 어울리는 인간.


절망적인 이야기 뿐이었지만
감정을 활자화하여 토해낼 필요가 있었다. 머릿속과 가슴속에 응어리진 걸 어딘가 발산해내고 싶었다.
언젠간 좀 희망적인 이야기를 쓰고 싶다.
이런 나도 해냈다는, 사소한 성공담을 쓸 수 있는 날이 언젠가 왔으면 좋겠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