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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인간관계에도 중독될 수 있을까

by Haileee 2021. 2. 26.

인간관계 중독이라는 개념이 있다면 나는 아마 인간관계 중독인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SNS 속 인간관계 중독. SNS를 통해 순간순간 채울 수 있는 인정 욕구에 매달려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기본적으로 동일한 관심사와 취향을 계기로 만난 사람들로만 이루어진 SNS 세계는 나에게 긍정적이고, 일관적인 지지를 보내준다. 부정적인 감정 소모나, 갈등으로 부딪힐 일이 전무하다. 나는 이렇게 안온한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거다. 어플을 끄고 직면해야 할 현실을 계속해서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내가 혼자서도 잘 놀고 잘 지내는 타입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SNS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혼자인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냥 혼자인게 익숙한 사람이었던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트위터 내에서 밈으로 종종 쓰이는 캡쳐 사진. 진짜 중독자인 내 입장에서는 마냥 웃으면서 보기 힘든..ㅋㅋ

 

 

어릴 때부터 과하게 내성적인 성격, 새로운 관계 형성에 대한 두려움, 낮은 자존감, 자기혐오, 자격지심 등등으로 똘똘 뭉쳐 친구 사귀는 것을 힘들어 했다. 어쩌다 친구가 생기면 질투심이나 이상한 소유욕 때문에 관계가 틀어지는 일도 많았다. 학창시절, 새해를 맞이하고 학년이 올라가 반이 바뀌는 걸 누구보다 두려워하던 그런 학생이었다. 대학교에서는 '아싸'를 자처하며 혼자 수업을 듣고 밥을 먹는 것 등 자발적인 개인주의가 관대하게 받아들여지지만 대학 이전의 학교 생활에서는 '혼자'는 허용되지 않는다. 혼자 다니는 애는 이상한 애. 낙오자. 왕따. 그렇게 명명된다. 모두가 무리를 짓는 데 혈안이 된다. 나도 소심하게나마 노력을 하긴 했다. 그래서 학창시절 내내 혼자였던 건 아니지만 비뚤어진 성격 때문에 같이 다니던 친구와 멀어지기도 하고, 글로 설명하기에는 너무 긴 일들을 겪어가다가 고3때 쯤에 무리에 속하려는 노력을 아예 포기하고 혼자가 되었다.

 

대학에 들어오고 나서는 어째서인지 나에게 호의적인 사람들이 많았던 이유로 좋은 친구들과 선후배들을 많이 사귀었다. 성격도 많이 유해졌다. (이래서 대학만 입학하면 모든 게 리셋되고 새로 태어날 수 있다는 맹신이 존재하는 건가 싶고) 대학 때 만든 인연이 전부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건 아니지만, 소수여도 아직까지 나와 연락을 나누는 동기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감사하다.

 

하지만 이 정도 관계로 만족하지 못하고 SNS로 만든 관계에 몇 년 동안 집착하고 있는 건 역시 학창시절에 겪은 실패와 그로 인한 결핍이 원인이겠지.

 

나는 학창 시절부터 '덕질'을 삶의 낙으로 삼았는데, SNS에서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소통하며 덕질하는 건 20대가 된 후 처음으로 경험했고, 그건 나에게 거의 신세계나 다름 없었다. 좋아하는 작품이나 가수 등에 대한 글을 쓰면 많은 사람들이 봐주고, 좋아해주고, 팔로워를 늘려가는 것. 현실에서는 받은 적 없는 관심과 지지를 받았다. 나의 지독한 자기혐오와 외모 컴플렉스에서 완전히 분리될 수 있었다. 그곳에서는 내가 올리는 글만이 나의 정체성이었다. 결핍이 컸던 만큼 나는 SNS를 통해 형성한 나의 정체성에 집착하게 된 것이다.

 

소위 '현실이 시궁창'일수록 필사적으로 SNS 세계에 눈을 돌리게 된다. 불안하기만 하고 불확실하기만 한 삶에서 유일한 도피처가 되니까. 그 순간 도피하면서 얻는 만족감 외에는 얻을 수 있는 게 없다는 걸 정말 잘 알고 있는데도 끊을 수가 없다. 이렇게 살다가 진짜 망할지도 몰라. 내가 이루고 싶은 걸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지도 몰라. 그런 불안감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망하지 않기 위해, 이루고 싶은 것을 이루기 위해 해야 할 일을 하기.

생산성은 없지만 순간의 만족은 얻을 수 있는 곳으로 회피하기.

 

당연히 전자를 선택해야 한다는 걸 알면서도 난 항상 후자로 도망친다.

쓸데없는 생각을 차단하고 할 일을 시작해버리는 게 상책이지만, '이렇게 해도 실패하면 어쩌지?'라는 불안감 때문에 하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다. 그렇지만 스마트폰을 붙잡고 있으면 그 순간만큼은 기분이 좋다. 재밌으니까. 그 안에 "사람들이 있"으니까.

 

사실 내가 안고 있는 문제는 SNS 속 인간관계 중독뿐만이 아니다. 다 팽개쳐두고 잠자기, 정크푸드 폭식하기(이건 예전보다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가끔 충동이 찾아오는 건 여전하다), 저금하지 않고 소비만 하기, 담배 피우면서 시간 때우기.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현재의 인스턴트식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으로 해소하는 짓만 몇 년을 지속해온 걸까. 몇 년이고 세어 볼 필요도 없이 난 평생을 이렇게 살아왔다. 잘못된 걸 알면서. 고치고 싶어하면서. 변하고 싶어하면서.

 

번아웃, 슬럼프라는 말은 내게 과분하다. 이건 뭐든 치열하게 임해본 사람들에게만 허락되는 말이다.

포기라는 말도. 나는 시작해본 적도 없기에 포기라는 말도 어울리지 않는다.

 

그냥 원래 이 세상에 없었던 사람인 것처럼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건 나에게도, 내 주변의 남은 이들에게도 아픈 일이니까.

그냥 원래 없었던 사람인 것처럼. 無가 되고 싶다는 생각.

 

어플을 지우고 단호하게 끊어내면 이 굴레에서 벗어나는 게 가능할까?

하지만 나는 이걸 단호하게 끊어내는 것조차 두렵다. 이렇게 살다가 인생이 망하는 것보다 나에게 유일한 즐거움이 되어버린 SNS 속 인간관계를 끊어내는 것이 더 두려울 정도로 나는 인간관계에 중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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