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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극복일기

우울증 극복 일기 17

by Haileee 2021. 4. 15.


피로와 스트레스의 누적과 그에 따른 불안감. 3주 정도 규칙적인 생활을 실천했다고 그게 그리 쉽게 습관화되는 게 아니었다. 하긴 3년 넘게 쓰레기처럼 살았는데 3주 했다고 삶이 기적처럼 바뀌면 반칙이겠지. 나처럼 사는 사람도 없을테고. 오늘은 어제보다 더 심하게 먹고 심하게 흡연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방문을 잠그고 몰래 담배를 피웠다. 소분된 크래커를 다섯 봉지 먹고, 반 년 넘게 찾지도 않았던 마카롱을 사서 세 개를 앉은 자리에서 먹어치웠다. 하던 공부도 전부 정리하고 독서실에서 퇴실했다. 앞으로 몇 시간이나 더 이러고 있어야 다시 앉아 제대로 공부를 시작하게 될지 가늠도 안 간다.


내가 스스로 정한 규칙적인 생활이 아직 나에겐 무리였던게 이제 와서 드러나는 건가? 좀 일찍 그랬으면 그만큼 일찍 규칙을 바꿨겠지. 한달 가까이 잘 되는 것 같다가 갑자기 이러니까 나 자신에게 드는 배신감도 더 커지잖아. 7시반에 일어났고, 아침에 운동하는 건 네다섯 번 정도 했고 12시까지 과일 이외엔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점심저녁도 건강하게 먹고 간식도 먹지 않았다. 살도 1kg 정도 빠졌다. 이틀 새 열심히 처먹었으니 금방 늘겠지만. 독서실이 집에서 너무 가까워서 가볍게 걸을 기회도 일부러 만들어서 걸었다.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열심히 잘 하고 있는 나만 아끼고 사랑하게 된다. 명상을 열심히 하고 긍정확언도 매일 읊었는데도 조건없이 나를 사랑하는게 어렵다. 게으르고 살이 붙은 나까지 사랑한다는 건 대체 어떤 걸까. 어떻게 하는 걸까. 뭘 어떻게 노력해야 날 아무 조건 없이 아껴줄 수 있을까.


세상에 이유 없이, 어떤 일이 생겨도 평가하지 않고 나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이 유일하다. 이론적으로는 알면서도 잘 되지 않는다. 게으르고 시도때도 없이 불안해 하는 나를 미워하는 것도 문제지만 외적인 게 더 문제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내 얼굴과 몸 상태를 확인한다. 살이 더 붙었나, 얼굴이 붓진 않았나, 너무 못생기진 않았나 하고. 뚱뚱하다는 이유로 굴욕을 당한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어서 그런 거다. 지금의 나는 객관적으로 봤을 때 아주 날씬하진 않아도 적정 체중이다. 하지만 이걸 잃을까봐 매일매일 걱정하고 불안해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불안감이 나를 폭식으로 더 강하게 몰아붙인다. 더 신기한 건, 살이 빠졌다는 칭찬을 듣게 되면 더 불안해지고 결과적으로 더 먹게 된다는 거다. 살 빠져서 예뻐졌다는 칭찬을 들으면 유지하기 위해 더 노력하려 하는 게 일반적인 사람의 심리 아닌가? 이래서 난 어떤 방식으로든 몸에 대한 평가를 듣고 싶지 않은데, 많은 사람들이 살이 빠졌다거나 예뻐졌다거나 하는 말이 상대에게 줄 수 있는 최고로 기분 좋은 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걸 듣고 싶지 않다는 내 소망과는 관계없이 계속된다. 이런 말들은 뚱뚱하다는 말 만큼이나 나를 옭아매는데. 스스로를 재단하고 평가하다가 스트레스로 이어져 결국 다시 살이 찌는 길로 인도하는데. 그냥 처음부터 평범한 체형에 평범한 식욕을 가진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금 나라는 인간을 구성하는 수 만 가지 잡념과 불안 중에 반 이상이 떨궈져 나갔을 것이다.


힘들거나 불안하면 음식부터 찾는 나를 혐오하는 눈으로 바라보다 보니 지금껏 생각하던 것들을 이렇게 구구절절 늘어놓게 됐다. 이런 이야기들도 병원에 가면 해야 할까? 의사 선생님께 어디까지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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