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이 내 곁을 떠나가질 않는다. 한창 무기력증과 우울증 때문에 병원을 가야하는 걸까 걱정하던 시기에 반복하던 것과 같은 행동들이 또 나타나고 있다. 새벽까지 sns 보기, 오후가 되도록 일어나지 않기, 가야하는 곳 귀찮아서 안 가기... 여기에 폭식까지. 어떻게 이렇게 한 순간에 과거의 나로 돌아가버릴 수가 있을까? 그래도 한달 정도 노력하면 좋은 습관이 자리잡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전부 헛된 기대였다. 대체 언제까지 멍청하고 게으르게 살아온 죗값을 치러야 하는 걸까. 언제쯤 나도 제대로 된 인간이 될 수 있는 걸까. 다시 막막해지기 시작했다. 나도 할 수 있을 거란 기대감과 자신감이 다시 점점 사그라들고 있다. 건강하게 살면서 가벼워졌던 몸에도 다시 살이 붙고 있고, 딱 그만큼 자기혐오도 차오른다. 그러면서도 내가 나를 싫어지게 만드는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나에게 선사하고 있다. 왜 이 굴레에서 벗어나기가 이렇게나 힘이 들까.
먹는 데에 돈을 낭비하는 내가 싫다. 몸에 나쁜 가공식품을 질릴 때까지 입에 집어넣는 내가 싫다. 그만큼 살이 붙는 내 얼굴과 허벅지가 싫다. 건강한 음식을 차려먹기 귀찮아하는 내가 싫다. 마른 몸을 가진 사람과 나를 비교하는 내가 싫다. 그다지 먹고 싶지도 않으면서 계속 먹는 폭식증을 떠나서 애초에 나는 먹는 걸 참 좋아하고 잘 먹는 스타일이다. 그렇게 잘 먹는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없는 게 너무 힘들다. 잘 먹는 나도 그저 나일 뿐인데. 모든 신경이 살찌는 데에만 집중되고 결국 잘 먹어서 살이 잘 찌는 나를 싫어하는 걸로 결론이 나고 만다. 우울과 무기력이 좀 나아지는 듯하면서 나를 어느 정도 긍정할 줄 알게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그냥 무기력이 나아지면서 폭식하는 습관도 일시적으로 나아지고, 그로 인해 일시적으로 살이 빠진 나를 긍정한 것이었다. 나라는 존재 자체를 사랑하게 된 것이 아니다. 나는 여전히 내가 봤을 때 괜찮아 보이는 체형인 나만 긍정한다. 그렇지 않으면 기분이 나쁘다. 기분이 나빠서 또 먹는다. 나이는 계속 먹는데 이 바보 같은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지를 못한다.
휴대폰만 들여다보는 내가 싫다. 이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누워만 있는 내가 싫다. 아무런 의욕도 없이 숨이 쉬어지니까 살아갈 뿐인 내가 싫다. 미래에 대한 어떤 비전도 없는 내가 싫다. 대체 왜 또 다시 이렇게 된 걸까? 처음에는 운전 면허라는 새로운 시도에 대한 불안감 때문인 줄 알았는데, 기능 시험을 붙고 나서 자신감도 좀 붙은 후에도 이러고 있는 걸 보니 그게 절대적인 원인은 아니었던 것 같다. 대체 왜 이럴까. 왜 이렇게 쉽게 나아지질 않는 걸까. 자꾸 왜 나는 내 스스로 고인물이 되기를 택하는 걸까. 아침에 쓰던 일기도, 아침마다 지키던 루틴도, 하루 두 번 하던 명상도 하지 않은지 2주가 넘어가고 있다. 엄마도 다시 나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나도 내가 걱정된다. 그럼에도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순간의 편안함만을 추구한다. 가만히 누워있기. 가만히 휴대폰만 바라보고 있기. 정크푸드 먹기. 그 순간만큼은 편안하고 만족스러우니까. 다음에 느낄 자괴감과 혐오감은 다음일 뿐이니까.
급기야 예약되어 있던 병원도 아침에 일어나기가 귀찮아서 가지 않았다. 까먹지도 않았고, 충분히 준비하고 나갈 수 있는 시간에 일어났음에도, 그냥 다시 누워서 잠들었다. 내일 아침으로 다시 예약했는데 과연 내가 일어날 수 있을까.. 아침이 싫던 몇 달 전의 나로 다시 돌아와버린 내가. 이 모든 증상들을 말하기 위해서라도 가긴 가야할텐데. 이게 언제까지 계속될까? 언제까지 좀 괜찮아졌다가, 다시 악화되어 약을 늘리거나 바꾸고, 그 늘리거나 바꾼 약에 익숙해져 다시 안정되었다가 금세 또 나빠지고.. 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까. 정상적으로 살고 싶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다. 우울증이라는 병에 휘둘리지 않는, 자립적인 삶을 좀 살아보고 싶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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