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우울극복일기

우울증 극복 일기 22

by Haileee 2021. 6. 5.

띄엄띄엄이지만 그래도 꾸준히 기록을 이어와서, 내가 언제부터 다시 상태가 나빠졌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다시 찾아온 무기력 때문에 힘들어 하기 시작한 지 곧 있으면 한달이다. 지난 약 3주를 되돌아보기도 두려울 정도로 나는 엉망이었다. 어떤 식으로 엉망이었는지 굳이 구구절절 늘어놓고 싶지도 않다. 그냥 자기 불신과 혐오가 곁을 떠나지 않는다는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그래도 기록을 하고자 블로그를 켰으니 이유를 몇 가지 정도만 들어보자면 먼저 병원에 무단으로 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원래대로라면 이번 주 수요일에 갔어야 했을 병원을 자느라 가지 못했다. 아니, 가지 못한게 아니다. 그저 누워 있고만 싶다는 마음에 가지 않았다. 병원에서 오는 전화도 받지 않았다. 자연스레 약 복용도 끊긴 상태다. 나는 어쩌면 우울과 무기력을 극복하고 싶지 않은 게 아닐까? 그냥 이대로 살고 싶은 거 아닐까? 끝없이 나를 미워하고 남과 비교하면서 몸은 그대로 침대 위에 편히 누워 있는 지금 이대로. 그 이외의 삶은 좀처럼 상상되지도 않고 상상하기도 귀찮으니까. 

 

 

요즘 내가 하고 있는 건 누워있기 그리고 먹기 두 가지 뿐이다. 이게 내가 나를 미워하는 두 번째 이유이다. 특히 먹는 것. 근 3주 동안 누워있거나 먹기만 하면서 5kg 늘었다. 평소 편하게 입고 다니던 모든 옷들이 나를 옥죈다. 그런 옷들을 입고 나가고 싶지 않다. 남에게 보여지는 내 모습이 신경 쓰여서라기보단 그냥 불편하게 꽉 맞는 옷을 입고 외출하는 나 자체가 싫다. 이렇게 되어버린 내가 싫다. 역시 난 적정 체중을 유지 중인 나만 신뢰하고 사랑할 줄 안다. 그깟 체중계에 뜬 숫자가 뭐라고 날 이렇게 오락가락하게 만드는지. 나는 날씬해졌다, 살이 빠졌다는 칭찬이 오히려 싫다는 말을 글로도 쓴 적이 있는 걸로 기억한다. 칭찬은 번지르르한 겉모습을 하고 나를 압박한다. 이 모습을 유지해야만 남들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인정받을 수 있다는 믿음을 견고하게 만든다. 이는 스트레스와 폭식으로 이어진다. 이건 영원히 아이러니로 남을 것이다. 왜 타인의 긍정적인 피드백이 똑같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걸까? 지금의 내가 좋으니까 지금의 모습을 유지하도록 노력해야지, 라는 마음으로 이어지지 못할까? 아무튼 나는 3주에서 한달 가량 요즘 외식, 배달, 편의점 음식으로 30만원 가까이 쓸 정도로 폭식했다. 지방이 덕지덕지 붙은 몸이 혐오스럽고 움직임이 가볍지 못해 불편하다. 그럼에도 먹는다는 행위를 멈추지 못한다. 걷기조차 귀찮아하는데 '급찐급빠' 따위 가능할 리가 있나. 그냥 영영 살찐 내 모습을 숨기고 살고만 싶다. 집에 있으면 누워있기밖에 하지 못해서 어쩔 수 없이 집앞 카페로 나온 지금도 아메리카노 대신 바닐라 라떼를 마시고 있다. 한동안 입지 않았던 헐렁한 추리닝 바지를 꺼내입고. 한심하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시 시작해야 할지 감도 안 잡힌다. 정말 작은 것부터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평소보다 조금 늦어도 좋으니 일단 일어나기. 살이 빠지지 않아도 좋으니 햇빛 아래서 10분이라도 걸어보기. 일단 병원부터 다시 예약하기. 먹는 행위로 나를 학대하지 않기... 영양가 없는 가공 식품을 하염없이 입에 집어 넣는 건 그 순간에만 좋을 뿐 학대라는 걸 충분히 알면서도 왜 고치지를 못하는 걸까. 지금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이 나에게 하등 좋을 게 없다는 걸 너무 잘 알면서도 왜 이 상태에 머무르려고만 할까. 일단 보기 쉽게 정리라도 해봐야겠다. 하기 싫어도 시작해야만 하는 것들을..

 

 

1. 월요일이 오자마자 병원 다시 예약하기

 

2. 9시에 일어나고, 다시 잠들지 않기 -> 일어나자마자 간단한 모닝루틴 적고 수행하기 (명상 등)

 

3. 세 끼 배부르게 잘 챙겨먹고, 그 외에는 먹지 않기

 

4. 다이어트 및 우울증 완화 차원에서 하루 30분, 주 3회 이상 운동하기 (스트레칭 포함 30분)

 

 

이 네 가지만 잊지 않고 실행하는 걸로 다시 시작해보자. 제발..

'우울극복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우울증 극복 일기 21  (0) 2021.05.25
우울증 극복 일기 20  (0) 2021.05.14
우울증 극복 일기 19  (0) 2021.04.29
우울증 극복 일기 18  (0) 2021.04.23
우울증 극복 일기 17  (2) 2021.04.1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