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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극복일기

우울증 극복 일기 20

by Haileee 2021. 5.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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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은 자존감과 무기력은 하루 아침에 고쳐지는 게 아니란 걸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자꾸 이 두 가지가 간헐적으로 날 괴롭히면 어김없이 무력해진다. 어느날 갑자기 역시 난 안 되는 걸까, 할 줄 아는 게 아무것도 없는 도움 안되는 인간인걸까 라는 생각이 나를 덮친다. 이게 심각해지면 명상을 하고 감사 일기를 쓰며 마음을 챙겨보려는 노력마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한 달 간 빠짐 없이 지켜오던 모닝 루틴과 운동, 명상 등등을 놓게 된지 일주일 쯤 되어 간다. 하루 이틀 빼먹었을 땐 가끔 이런 날이 있을 수 있지, 포기만 하지 않으면 돼 라는 마인드를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었는데 일주일이 되어가니 그런 생각조차 희미해진다.

 

 

사실 나를 이렇게 만든 원인은 명백하다. 5월 초부터 시작한 운전 면허 준비 때문이다. 지레 겁을 먹고 시도하지 못했던 면허 따기를 시작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지금 생각하니 너무 조급했나 싶기도 하다. 정신적으로 점점 안정을 찾는 것 같고, 나를 미워하고 불신하는 마음도 사그라들어 가는 것 같아서 시도한 건데 기능 시험을 한 번 실격했다는 이유로 나는 그 무엇도 하지 못하고 다시 멈추어 있다. 면허 학원 수강료와 검정료가 좀 저렴했다면 이 정도는 아니었을 것 같다. 난 평소 부모님에게 손을 벌리는 데에 큰 죄책감을 지닌 편이다(그러면서 돈을 벌기 위해 일하는 건 두려워 해서 끝없이 손을 벌리는 모순적인 인간이다.). 면허가 그 죄책감의 크기를 빠르게 불려 나가는 것 같다. 부정적인 생각으로 나를 몰아넣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든다. 또 불합격해서 또 결제를 해야 하면 어떡하지. 떨쳐내려고 해도 쉽게 떠나보내지지 않는 이 생각 때문에 괴롭고 불안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런 감정을 솔직히 말할 필요가 있다. 두렵지 않고 걱정이 되지 않는다고 나를 달래봤자 솔직히 그건 거짓말일 뿐이다. '끌어당김의 법칙' 영상을 보면서 배운 '이미 가지고 있는 것처럼 행동하기', '심상화' 등등은 솔직히 아직 나에게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내가 그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알맞게 적용하지 못하고 있는 거겠지만. 아무튼 나의 솔직한 감정을 글로라도 표현할 필요를 느껴서 오랜만에 블로그를 킨 것이다. 두려움과 불안함이 내 마음 속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되뇌어 봤자 지금 내 상태에서는 세뇌라고밖에 여겨지지 않는다. 그래. 솔직히 내일 또 있을 교육과 시험이 두렵다. 한 번 실격한게 쪽팔린다. 두 번째에도 떨어질까봐 무섭다. 또 돈을 써야 할까봐 무섭다. 벌써 부모님께 미안하다. 면허를 왜 따야 하지? 물론 운전을 할 줄 알면 뚜벅이 인생보다 훨씬 편안해질 것이다. 나도 그걸 원해서 겁나는 걸 무릅쓰고 시작한 것이니까. 무엇보다 엄마를 도와주고 싶었다. 항상 조수석에 앉아있는 내가 부끄러웠다. 엄마가 마트에 갈 때, 병원에 갈 때. 조금이라도 편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 반, 드라이브라는 취미를 가져보고 싶은 마음 반으로 시작한 것인데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새로운 시도, 그것도 사람의 생명이 걸린 운전이라는 시도라는 건 원래 사람을 어느 정도 불안정하게 만드는게 맞겠지. 두려움을 느끼는 게 지극히 정상적이라고 믿고 싶다. 나는 정상적인 감정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유난 떠는게 아니다. 그냥 이렇게라도 믿어야겠다. 이런 감정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2

요즘 정말 안 좋은 습관이 생겼다. 방에서 몰래 흡연하는 습관. 진짜 미친 거지. 집에 아무도 없거나 모두가 자는 시간에 창문을 열어두고 담배를 피운다. 이런 부정적인 행동이 나에게 부정적인 에너지를 주입하는 하나의 원인인 것 같기도 하다. 한동안 이 안 좋은 습관을 달고 살다가 드디어 진심으로 고쳐야겠다, 바뀌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전자담배를 처분했다. 이 결심이 나의 건강은 물론이고 멘탈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길 바란다. 금단 현상 때문에 한동안은 힘들겠지만 담배 생각이 나면 산책을 하고, 물을 마시고, 운동을 하는 등 여러 방면으로 노력을 해봐야겠다.

 

 

3

무기력과 불안감 때문에 해야 할 일들을 미루는 행동의 짝꿍처럼 따라온 것이 미디어 중독이다. SNS를 보다가 새벽에 잠들고, 유튜브 영상을 끊임없이 보고.. 이 행동들이 자존감을 낮추고 자기 혐오를 다시 키우고 있다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있다. 나는 아이돌 영상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페미니즘과 탈코르셋을 응원하면서 동시에 걸그룹을 무척 좋아하는 모순을 안고 있다. 최근 날씬하고 예쁜 걸그룹 영상을 보면서 그저 좋다는 감정 이외에 내 몸을 미워하는 마음까지 피어오르는 걸 자각했다. 나는 연예인도 아니고, 아니 내가 연예인이든 무엇이든 간에 내 몸을 미워할 이유는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아도 감정은 따라가지 못한다. 예뻐지고 싶다, 마른 몸을 가지고 싶다 라는 욕망. 지금보다 어릴 때에 비해선 많이 완화된 편이지만 나는 언제쯤 이 욕망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욕망은 더 '예뻐지고' '날씬해지기' 위한 노력으로 이어지지 않고 스트레스와 폭식 그리고 우울로 이어진다. 그러면서도 걸그룹은 좋아해서 영상 보는 걸 멈추지는 못한다. 극단적인 양가감정에서 허우적댄다. 이러한 감정은 일상 생활에까지 이어져, 길거리를 지나다니는 여성의 몸과 내 몸을 끊임없이 비교한다. 비교와 평가를 멈추는 것이 평온의 시작임을 알면서도. 아는대로 행하는 건 왜 이렇게나 힘이 들까.

 

 

미디어 중독과 우울증이 상관 관계가 있다는 건 이제 거의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난 지금 내 스스로 다시금 우울의 길로 돌아가고 있다. 참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담배를 피우고, 죽도록 관리한 연예인들의 몸을 보며 자기 혐오에 빠지고,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해 불안해 하고.. 병원에서는 우울증이 온전히 나아지기까진 최소 6개월의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난 아직 치료를 시작한지 약 3개월 째다. 지금 내가 겪는 우울은 이상한 게 아니다. 거쳐야만 하는 과정 중에 하나다. 무사히 헤쳐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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